푸근한 체취, 안정된 심장박동, 따스한 눈빛이 늘 공존하던 아늑한 세계(世界). 그곳에서 먹고 자며, 고물거리던 작은 생명이 자라난다. 변함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머금고서.
해거름이 질 때면 갈대를 지휘봉 삼아 신나게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했다. 막둥이 업고, 보따리 이고 오는 어머니의 허리와 목, 끊어질 듯 아프신 것도 모른 채.
어릴 적 우리 칠 남매에게 종종 떡을 만들어 주셨던 엄마. 이 시루에 쌀가루와 팥을 층층이 쌓아 쪄내면 항상 맛있는 떡이 완성되곤 했다. 엄마의 포근한 사랑이 배어 더욱 맛있었던 떡은 내게 따스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엄마가 15년간 가족들의 약을 달일 때 사용하신 약탕기. 오래 뭉근히 끓여야 약 효과가 좋았기에 엄마는 항상 다 달여질 때까지 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이 약탕기를 지켜보셨다. 엄마가 사랑으로 달여주신 약 덕분에 건강히 자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딸이 어머니를 찾아왔다. 함께 외출을 준비하며 딸은 어머니의 손톱에 봉숭아 꽃물 색을 칠했다. 평생 농사일로 흙빛에 물든 어머니의 손이 금세 수줍어졌다.
젊은 시절, 엄마가 사용하시던 30년 된 분첩. 엄마는 오 남매의 학교에 오실 때마다 이 분첩으로 곱게 화장을 하셨다. 젊고 고왔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다.
엄마가 스물네 살 때부터 연주해 온 기타이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여름 휴가를 보낼 때면 바닷가에서 기타를 치며 놀기도 하고, 테이프에 기타 연주를 녹음해 친구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고 한다. 즐거운 추억을 얘기하는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언제쯤 가늠할 수 있을까.
우주보다 광대한 사랑을.
어머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일하러 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홀로 논농사를 지으며 우리 네 자매를 키우셨다. 이 사연이, 해외건설협회에서 펴낸 월간지 《밀물》에 실렸다. 어머니는 논에서 종일 일하다 해가 기울면 흙투성이가 된 채 오셨다. 터덜터덜 걸어오다가도 마중 나와 있는 우리를 보면 환히 웃으시던 어머니. 그 삶의 무게를 이제야 깨닫는 못난 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유품들 사이에서 일기장을 발견했다. 육 남매를 출가시키고 적막한 집에서 자식들을 그리워하셨을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인생의 쓴맛 단맛, 편식할 틈도 없이 지내온 세월.
딱히 특별할 것도, 재미날 것도 없는 일상에서 어머니가 웃으신다.
못난 나를 보며 웃으신다.
나와 동생의 출산 관련 기록이 담긴 물품들. 엄마가 산부인과에서 출산할 때 엄마와 우리가 함께 차고 있던 팔찌와 임산부 기록지, 초음파 사진이다. 엄마는 이것이 우리와 당신을 연결하는 끈이라며 30년간 고이 보관해 놓으셨다.
엄마가 딸아이에게 만들어 준 뜨개옷. 손재주가 좋았던 엄마는 내가 어릴 적에 남대문 시장에서 털실을 사서 내 원피스를 만들어 주셨다.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갖게 되자 엄마는 딸아이에게 돌 기념 선물을 주기 위해, 내 원피스를 한 올 한 올 다 풀어서 이 뜨개옷을 만드셨다. 35년간 이어진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이 옷은 나에게도, 딸에게도 소중한 선물이다.